확인하는 습관

전광투데이 승인 2024.02.18 17:31 의견 0

관주산 정상에서 운동을 마친 후 일행과 함께 내려와 편백 숲길을 지나는데, 우연히 바라본 나뭇가지에 지난 가을 거미가 쳐 놓은, 길게 늘어진 거미줄에 이미 다 말라버려 종이처럼 보이는 나뭇잎 한 장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무정한 바람은 자꾸 나무를 흔드는 것을 보면서, ‘겨울은 역시 모두에게 힘 드는 계절이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띠로링!’하며 휴대폰에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 열어보니 ‘요즘 부고(訃告)를 위장한 보이스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선배께서 “어! 내 휴대폰이 어디 갔지?” 하며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아까 정상에서 전화 받고 어디에 두셨어요?” “내가 주머니에 넌다고 잘 넣는디 으디로 갔으까? 이상하네!” 하며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형님! 아까 전화 받으시고 정말 주머니에 잘 넣으셨어요? 혹시 의자에 놓아두신 것 아닐까요?”“아닌디 내가 분명히 여기 바지 주머니에 넣단 마시!” “그러면 그게 어디로 갔을까요? 혹시 길바닥이나 다른데 떨어진 건 아닐까요?” 하자 옆에 있던 후배가
“그러지 말고 우리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지금 빨리 산에 가보세요!” 하자 “그라문 그라까?” 하며 부리나케 정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보고 “저 양반 혹시 집에서 휴대폰을 안 가지고 오신 것 아닐까?” “분명 가지고 오신 것은 맞아요. 아까 내가 누구에게 전화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러면 전화 끝나고 어디에 넣었는지 못 보았는가?”
“내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따라다니며 보겠어요?” 하더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제가 지난 달에 지리산에 다녀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그날 뱀사골 호리병처럼 생겼다는 병소(甁沼)까지 올라간 다음 천년을 살았다는 천년송이 있는 와운(臥雲)마을을 들려 내려왔는데 배가 많이 고프더라고요. 그래서 뱀사골에 있는 평소에 잘 아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은 다음 집으로 출발했는데 그때가 오후 5시쯤 되었더라고요.”
“그러면 오후 7시쯤 도착했겠는데.” “그런데 차가 한참을 달려 순천에 거의 왔을 무렵 갑자기 앞에 앉아 있는 선배께서 ‘내 휴대폰!’ 하자 옆에 있던 운전하던 선배께서도 ‘그라고 본께 내 휴대폰도 안 갖고 왔는 갑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식당 주인의 휴대폰 번호를 몰라 유선전화를 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그러면 답답했겠는데.” “그런데 형님도 아시다시피 고속도로를 달리면 또 차를 쉽게 돌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황전을 지나 순천에서 차를 돌린 다음 다시 뱀사골로 달려가면서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받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휴대폰을 놓아두고 와서 다시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잘 보관해달라.’하고는 부지런히 달려갔는데 그때가 이미 오후 7시가 넘었더라고요.” “그러면 저녁 식사는 어떻게 했는가?” “집에 와서 저녁밥 먹기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인데 어쩌겠어요? 기왕에 늦은 것 식당에서 먹고 출발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한밤중이 되었더라고요.”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이! 산에 있데!” 하며 선배께서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띠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휴대폰이 어디에 있던가요?”
“그게 아까 전화를 받고는 주머니에 잘 넌다고 넣는데 그때 낙엽 위로 떨어졌던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정상에서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네! 그래서 얼른 찾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전화가 끝나고 주머니에 넣으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더라고!”/류상진 전 보성우체국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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